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李東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40534
  • 전몰일자 : 19520208

공훈사항

이동수 상병은 1932년 12월 15일 경상북도 경산군 남산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자, 그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상병은 1950년 8월 15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은 군위, 영천 전투에 투입되어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내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평강-곡산-평양 북방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진격했다. 연대는 11월 초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묘향산 전방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1월 27일 철수를 개시하여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의 38도선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부터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 때까지 연대는 중동부 축선의 인제-하진부리-평창-영월 선을 오르내리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백석산과 그 남쪽의 917고지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백석산 탈취에 실패했다.
사단은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사단은 28일까지 수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지켜냈다(제1차 크리스마스고지전투). 이후 연대는 큰 전투 없이 위력수색과 매복, 수색정찰,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상병은 1952년 2월 8일 분대원을 이끌고 수색정찰 임무 수행 중에 적의 기습적인 사격으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상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4228 육)을 추서하고, 유해(34묘역-판-2272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ㄷ-10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