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수(이동수)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209774
  • 전몰일자 : 19530703

공훈사항

이동수 대위는 1929년 11월 4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그는 과거 군 경력을 인정받아 1951년 1월 27일 장교로 임관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수 대위가 전선에 부임할 무렵 제1사단은 중부전선에서 진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연천 북방의 임진강 북안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국군 제1사단이 고양대 일대의 전초진지(니키 고지, 텟시 고지, 노리 고지, 베티 고지)에서 중공군과 접전하여 주저항선을 방어하였다.
이동수 대위는 연대 장병들을 지휘하여 1952년 10월 1일부터 임진강 서안 일대를 방어하고 임진강 동안의 고지전을 수행하였으며, 때때로 북한군 전초진지에 침투하여 북한군 포획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0월 6일 중공군 제116사단은 사단 작전지역에 맹렬한 포격을 가한 후 오후 7시 55분경 텟시 고지 및 니키 고지를 공격하였다. 연대 수색 중대 전초 소대가 이를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중공군의 공격 준비 사격에 철조망, 지뢰, 교통호가 거의 파괴되어 역부족이었다.
12월 13일까지 이어진 이 전투에서 국군 제1사단은 초전에 니키 고지와 테시고지를 상실하고 그 직후방의 베티 고지와 노리 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중, 중공군이 재차 공격을 감행하자, 국군 제1사단은 포격지원과 항공 근접지원을 받아 가며 끈질긴 공방전을 벌인 끝에 베티 고지와 노리 고지를 확보하였다.
1953년 초,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 양측은 1952년 말까지 계속된 치열한 고지쟁탈전 후 전선정비를 하였다. 이 대위의 진두지휘하에 장병들은 1953년 3월 6일~3월 7일 317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6월 20일부터 9일간 걸쳐 뺏고 빼앗기는 박·퀸 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반복하였다.
이동수 대위는 치열한 포격 및 개인화기로 저항한 상황에서 기관총사수와 부사수가 전사하자 기관총 진지로 달려가 기관총을 난사하였으나 후속하는 적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1953년 7월 3일 연천 지구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수 대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11175 육)을 추서하고 유해(33묘역-판-125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1-ㅋ-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