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소(이동소)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4572
  • 전몰일자 : 19530501

공훈사항

이동소 중위는 부산시 동대신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험난한 격동기에 청년기를 맞아 조국을 지키는 간성이 되고자 군문을 두드렸다. 그는 과거 군 경력을 인정받아 1952년 3월 28일 장교로 임관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소 중위가 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군 경력자를 소집해 현지 임관하는 제도를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태릉(현 서울시 노원구)에서 장교를 양성하고 있었지만 소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 군은 현지임관 제도를 보충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소 중위가 사단에 부임할 무렵 전선 상황은 휴전회담이 여전히 중단된 상황에서 전선은 소강상태를 유지하며,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고,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도 계속되었다.
이 중위의 진두지휘 하에 사단 장병들은 1953년 1월 23일 노리 고지를 급습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고지탈환 후 북한군의 기습을 대비하여 야간정찰과 진지 보강작업에 주력하였다. 쌍방은 교착된 전선에서 전투보다는 진지강화와 부대정비에 전력하였으며, 전초와 엄호부대 사이의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방어진지나 활동을 탐색하는 수색정찰 등을 주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동소 중위가 지휘하는 연대병력은 1953년 3월 6일~3월 7일 317고지 전초기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가 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이 중위의 진두지휘 아래 일부 병력은 야간정찰을 하던 중 북한군과 조우하여 소총 사격을 가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동소 중위는 1953년 5월 1일 연천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소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2판-2면-93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1-ㅌ-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