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섭(李東燮)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234984
  • 전몰일자 : 19520213

공훈사항

이동섭 하사는 1933년 5월 21일에 황해도 사리원군 신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방어진지에서 철수할 때인 1951년 1월 2일에 부산에 설치한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섭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2월 말, 제2사단은 2월 13일 안동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후방교란을 일삼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후방지역작전을 완수하고 4월 28일에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으로 이동하여 전방작전지역에 투입되었다. 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조심스럽게 38도선을 향해 전진하다가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징후들이 포착되자 방어로 전환했다. 예상대로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용문산-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0일을 기해 일제히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상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며 진격했다. 6월 12일까지 육단리-적근산(1073고지)을 잇는 선까지 진격하여 6월 중순까지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쌍방 간에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사단은 상급부대 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한 일환으로 방어진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로 했다. 사단은 8월 2일부터 8일까지 뺏고 빼앗기는 고지 쟁탈전을 했으나,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745고지에 대해 9월 1일에 재차 공격하여 3일에 탈취했다. 미 제9군단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격하여 금성천 분지를 장악하기로 했다. 이에 제2사단은 10월 13일부터 공격을 개시했다. 이동섭 하사가 소속된 제32연대는 사단의 조공으로서 1단계로 492고지를 탈취하고 2단계로 북정령-하진현 방향으로 공격했다. 결국 사단은 10월 21일에 금성 서남측 직목동 지역까지 진출하여 최종 목표를 점령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에 들어가면서 방어진지 보강과 전방에 대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1952년이 되어서도 전선의 소강상태는 계속 되었다. 그러던 중 이동섭 하사 소속된 소대는 2월 13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섭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08묘역-1판-166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ㄴ-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