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섭(李東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소령
  • 군번 : 13633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동섭 소령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1948년 12월 7일, 육사 8기로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군사교육을 수료하고 1949년 5월 23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경기도 시흥의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섭 소령이 소속된 제17연대는 동년 6월 20일에 서울 용산으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에 예속되었고, 11월 15일에 옹진반도로 이동하여 옹진지구전투사에 배속되어 제2연대로부터 38도선 경계임무를 인수했다. 당시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소부대별로 분산되었고, 다음날 인천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중순에는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1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전과를 획득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은 계속되던 후퇴 상황에서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크게 기여했다며 연대 전 장병을 1계급 특진시켰다. 연대는 7월 말에 대구로 이동하여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9일 야간에 수도사단으로 배속되어 기계-안강지역에 투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는 적 제12사단의 일부 병력이 포항 북방의 소티재에서 포항으로 진입할 태세를 보이고, 1개 연대는 도음산∼236고지∼227고지∼경주로 연결된 능선 축선을 지향하여 안강·양동 부근까지 진출하는 등 기계지구의 전황이 급변하였기 때문이다.
이동섭 소령이 소속된 제17연대는 8월 11일 아침 안강 지역에 도착하여 포항지구전투사령부의 지시를 받아 12일 아침부터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기계-안강 지역을 지켰다. 만약 기계-안강 지역이 적에게 점령당하면 적이 바로 경주-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이 종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지역이었다. 결국 연대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저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동섭 소령은 당시 중대장으로서 항상 용감하게 진두지휘했다. 그러던 중 그는 8월 20일에 전투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섭 소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583 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15묘역-3판-5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ㅊ-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