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섭(李東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81698
  • 전몰일자 : 19530525

공훈사항

이동섭 상병은 1933년 3월 13일에 경기도 김포군 대곶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던 1950년 12월 30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섭 상병이 부대로 전입해 왔을 때인 1951년 2월 중순에 제2사단은 충주-단양-풍기 일대에서 병참선 경계작전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후 2월 13일에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작전을 실시했다. 3월에는 속리산 일대로 이동하여 후방지역작전을 계속 실시했다.
제2사단은 4월 28일에 다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전투지역인 청평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중공군의 제5월 공세’를 맞아 격퇴하고 즉각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6월 15일까지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즈음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공산군은 전투력을 증강시켰다. 이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공세적인 행동을 명령했다. 이에 10월 13일부터 김화-금성 진격작전을 실시했고, 이동섭 상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예비연대로서 제17연대를 초월공격하여 18일에 최종 목표인 522고지를 탈취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2사단은 1952년 3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사창리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으로 전기전술을 숙달했다. 그리고 다시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 방어진지에 배치된 미 제40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10월 14일에 군단작전계획에 의거 김화 북쪽의 ‘저격능선’을 공격하여 탈취했다. 이후 중공군의 역습으로 다시 빼앗기고, 빼앗는 치열한 전투가 42일 동안 계속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중공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저격능선을 사수했다.
이후 제2사단은 12월 1일부로 군단 예비로 전환하여 사창리에서 야외기동훈련을 했으며, 다시 1953년 1월 30일에 미 제3사단의 방어작전지역을 인수하였고, 이동섭 상병이 소속된 제31연대는 사단의 우측연대로서 중강리-하진명동을 잇는 선에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5월 16일에 방어지역 전방으로 수색정찰을 나갔다가 적 매복조를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섭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6판-5면-2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1-ㄴ-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