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섭(李東燮)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동섭 경사는 1913년 7월 5일 함북 청진시 포리읍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철도경찰 소속으로 재직 중 개성에서 전사했다.
1949년 4월 22일 내무부 치안국은 치안국 직속으로 철도경찰본대를 두고 용산, 청량리, 인천, 개성, 대전, 곡성, 광주, 목포, 순천, 대구, 안동, 부산에 지방철도경찰대를 설치하여 운영했다. 철도경찰에게 부여된 주 임무는 철도역과 교량·연선(沿線)·터널 등 철도시설의 경계였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철도경찰대 본대는 모든 지방철도경찰대에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명령했다. 개성 정면의 북한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은 아군이 배치되지 않은 지역으로 우회하여 후방에서 공격을 함으로써 순식간에 아군진지를 무력화시켰으며, 일부 병력은 열차를 이용하여 경의선의 여현 쪽에서 기습공격으로 개성역을 장악했다.
개성 철도경찰대장은 6월 25일 오전 5시 30분에 전 본부대원을 비상소집하여 본부와 철도건물 방어, 관내 방어, 유선 두절 시 일반 경찰과 합류하여 행동할 것을 지시했다. 대원들이 각 부서에 배치되자 상황파악이 어려운 가운데 적 포탄이 떨어졌으며 곧이어 적군이 들이닥쳤다. 오전 7시 30분경에는 통신이 두절되고 본부 앞은 적군으로 가득했다.
대원들은 적의 공격에 침착하게 대응하여 적의 제1진을 격퇴했으며, 적은 경찰대의 조직적인 저항이 계속되자 전차를 동반하여 공격을 했다. 오전 8시에 전차 5대가 시가지 동쪽에서 출현하여 본부건물을 포격으로 파괴하기 시작하자 대원들은 일단 방공호로 대피했다. 본부건물이 파괴되자 적은 내부에 들어오면서 사격을 하며 수류탄으로 공격했다. 개성 철도경찰대장 감봉룡 경감은 최후를 각오하고 대원들에게 총탄 한 케이스만 남기고 최대속도로 사격하라고 명령하고 선두에서 적을 향해 돌격했다. 이로 인하여 본부건물 안팎은 치열한 전투현장으로 바뀌었다. 대원들은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 전투에서 감 경감을 비롯한 43명이 전사하고 8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이 경사는 본부건물을 사수하기 위해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섭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3-ㄹ-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