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선(李東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4412
  • 전몰일자 : 19501216

공훈사항

이동선 일병이 충청북도 제천군 제천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11월 중순 제17연대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1공병단으로 배치되어 사단 공병부대 창설과 교육에 전념했으며 1950년 1월부터 38도선 방어진지 구축작업에 투입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병은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보병전투에 참가하여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켰다. 육군본부는 1950년 8월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제1102야전공병단은 낙동강선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제2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전사자 명부에 소속이 202야공단으로 당시에 미존재 부대로서 제1102야전공병단으로 조정하여 기술)
제2군단은 7월 12일 경북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북진작전 당시 제6・7・8사단을 배속 받아 작전을 했다. 제2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6사단은 주공으로 신녕-충주-원주-화천 모진교-평강-신고산-원산-양덕을 거쳐 성천-순천-개천-희천-초산으로 진격하여 10월 26일 압록강변의 초산까지 진출했다. 제8사단은 조공으로 의성-안동-양평-미아리-동두천-평강-곡산을 거쳐 성천-가창-북창-덕천-희천으로 진격하여 10월 26일 구장동, 희천까지 진출했다. 제7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다가 포천–김화-평강-신계-수안-율리를 거쳐 10월 20일 평양을 점령했다. 제2군단사령부는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곡산-평양-개천으로 진격했다. 북진작전 간 이동선 일병의 제1102야전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 사단들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초산, 희천까지 진격한 제2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2일부터 38도선 상으로 축차적으로 진지를 점령하며 지연전을 펼쳤다. 이 때 공병단은 철수로 확보 및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이동선 일병은 앞장서서 다양한 공병 임무를 완수해 왔으나 1950년 12월 16일 연천 일대에서 적 게릴라를 추격하던 중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선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084-ㅊ-05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