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선(이동선)

  • 군별 : 육군
  • 계급 : 소위
  • 군번 : 118654
  • 전몰일자 : 19520531

공훈사항

이동선 소위는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 등을 고려하여 작성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1년 10월 하순, 전남 광주의 육군보병학교로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훈련과정을 수료한 후 1952년 1월 4일에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수색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동선 소위가 부대에 전입했던 1월 중순, 제6사단은 1월 10일부로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나아가 지휘소 및 보급소, 그리고 탄약고를 폭파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후 사단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했다. 사단은 3월 29일부로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연하는 방어진지를 점령했으며, 소속도 미 제9군단에서 백 전투사령부(4월 5일부로 제2군단으로 개칭)로 배속이 변경되었다.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이 시기에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하면서 전투력을 강화하자, 유엔사는 휴전협상을 촉지하고 공산군의 전투력을 분쇄하기 위해 예하 부대에 방어진지 전방에 대해 공세행동을 하도록 명령했다. 이 제6사단 장병들은 새로 인수한 방어진지 보강에 집중하면서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행동을 준비했다. 한편 사단 수색대는 전선이 소강상태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의 공격징후가 있는지 적정을 살폈다. 그러던 중 이동선 소위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5월 31일에 적진에서 적정을 수집하던 중 적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적으로부터 이탈에 성공한 후 아군 지역으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선 소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5묘역-3판-48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ㅎ-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