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선(李東先)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203

공훈사항

이동선 경사는 1928년 8월 16일 전남 보성군 득량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남도경 보성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보성 회천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경사는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7월 4일 한강방어선을 돌파하여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남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보성경찰은 보성의 주요 시설 경비, 벌교-보성, 보성-순천, 보성-장흥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 제6사단이 7월 20일 전주, 장성, 광주를 점령하고, 7월 24일 적 제6사단의 선발대가 보성 전방에 진입하면서 경찰전초를 격파했다. 보성부대는 하는 수없이 주력을 철수시키고 후위만을 남겨 적정을 수집하도록 했다. 이 경사는 보성경찰부대의 후위로 편성되어 보성에 남아 적의 동향을 파악하며 게릴라전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과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전선이 북상하면서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보성경찰은 9월 22일 보성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와 잔적소탕작전을 수행했다.
도주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지리산 일대 산악으로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전남경찰은 국군 제11사단에 배속(1950.10.14.-1951.4.6)에 배속되어 공비섬멸작전을 전개했다. 이 경사는 1950년 10월 14일부터 보성군 일대의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1950년 12월 2일 보성 회천면에 공비들이 출현하자 벌교·보성경찰병력이 출동하였고, 곧바로 교전이 벌어졌다. 이 경사는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선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9-ㄴ-06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