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석(李東碩)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621015
  • 전몰일자 : 19511022

공훈사항

이동석 일병은 1927년 3월 15일에 전라남도 여천군(現 여수시) 화양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6월 12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8106부대로 배치되었다.
(*전사자 명부에 제8106부대는 고유명칭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입대부터 전사 당시까지 6·25전쟁의 전반적인 경과 위주로 기술)
이동석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유엔군과 중공군은 중공군의 1951년 5월 공세 이후 군사작전만으로는 전쟁을 종결짓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휴전을 모색했다.
이에 따라 7월 10일 양측이 최초로 휴전회담을 열었고, 이후 전투는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고지쟁탈전 양상으로 변모되었다. 이런 전황 속에서 美 제8군은 적에게 혼란을 주고 방어선의 취약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제한된 목표에 대한 공격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美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가장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美 제10군단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이동석 일병이 소속된 부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고, 9월 2일 마침내 적의 강력한 저항을 물리치고 목표를 확보했다. 계속해서 이동석 일병의 부대는 9월 15일 883고지-892고지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교전을 거듭한 끝에 9월 18일 마침내 883고지를 확보했다.
이어서 이동석 일병과 부대원들은 美 제2사단의 단장의 능선 탈취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9월 24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고, 백석산 남방의 1,016고지를 점령했다. 부대는 9월 26일 백석산 주봉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9월 28일 캔자스(Kansas)선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석 일병은 분대원과 함께 백석산을 목표로 돌격을 감행하다가 적의 기관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제27육군병원(대구)으로 후송되었으나, 10월 22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33판-39면-2169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ㅎ-00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