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석(李東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380316
  • 전몰일자 : 19510212

공훈사항

이동석 이병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자 1950년 12월 하순경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제5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제5사단은 6·25전쟁 초기에 입은 손실로 1950년 7월 5일 해체되었다가 10월 8일 대구에서 제27・35・36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된 후, 전선으로 투입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대이다.
이동석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1951년 1월 24일 美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의 지휘 하에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려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문막 일대에서 제천-영월로 방어 배치를 전환하여 영주 지역에 침투한 북한군 제2군단 예하 부대들을 격멸했다.
그 후 사단은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인 이동석 이병이 소속된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했다. 이로써 사단은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2월 9일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여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강원도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횡성 일대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동석 이병은 1951년 2월 12일 횡성 일대 방어진지에서 분대원과 함께 철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석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ㅍ-03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