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생(李同生)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22261
  • 전몰일자 : 19511106

공훈사항

이동생 일병은 경상북도 포항시 대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경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에서 정비 중이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이때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공격을 받고 평창으로 철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이후 국군은 공세로 전환하여 3월 7일부터 리퍼작전을 전개했고, 연대는 제3군단에 배속되어 3월 말 현리 일대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연대는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을 물리쳤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오미재 고개가 차단당한 가운데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자 장병들은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양양, 고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양구 동북방의 가칠봉 일대로 이동하여 제5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휴전회담을 지원하고 전선의 요철을 정리할 목적으로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공격을 명령했다. 이에 연대는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1월 6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7-ㅍ-09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