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삼(李東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225577
  • 전몰일자 : 19510425

공훈사항

이동삼 이병은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초순경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2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삼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당시 전황은 북진을 계속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12월 초 중공군의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철수한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5사단은 12월 10일경에 춘천 지역에 투입되어 철수하는 아군의 평양-서울 간 도로 동측방에 대한 엄호작전을 실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12월 13일부로 춘천 북방 38도선 일대의 전선 방어(탑두울-배후령)에 투입되었다. 이동삼 이병이 소속된 제27연대는 청평 동쪽의 호명산 일대, 제35연대는 북한강 서쪽의 송암리 일대, 그리고 제36연대는 가평 북쪽의 지암리 일대에 배치 중공군의 공세에 대비하고 있었다.
1951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했다. 2월 9일 섬강 남쪽으로 진출하면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했다. 이어서 사단은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 후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사단은 2월 12일 아침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했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3월 3일에 美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3월 7일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지역의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는 적의 최후 거점인 태기산을 점령하고,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을 잇는 선에서 최종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10일 공격을 개시하여 19일에 목표인 인제를 점령하고, 그 북쪽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면서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점령했다. 제27연대는 사단 예비로 후방지역 경계를 담당했다. 이동삼 이병은 4월 25일 인제 지역에서 분대원과 함께 전방 연대 철수작전을 지원하던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삼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0묘역-2판-167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ㄴ-07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