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복(李東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204382
  • 전몰일자 : 19501125

공훈사항

이동복 이병은 1930년 5월 21일에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에서 출생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광복을 맞이했으나 정부수립 준비로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1일, 그는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제2연대가 1950년 6월 20일 홍천으로 이동할 때, 그는 제6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이동복 이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하고 있었다. 이후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6월 30일부터 원주를 거쳐 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하여 8월과 9월에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당시 공병부대는 공격시에 보병부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함창-문경-원주-춘천 방향으로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해서 화천-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추격하여 성천을 점령했다. 이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동복 이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며 진격 속도를 증가시켰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이에 제7연대는 10월 26일에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날 동림산 일대에 은거 중이던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아군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에 이동복 이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도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며 130km가 넘는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여 11월 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이후 11월 14일에 영원-덕천으로 이동하여 국군 제2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유엔군 11월 24일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공격 2일 차인 11월 25일 야간부터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제 공병중대는 장애물 개척보다 포위된 차단선을 돌파하여 후방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날 그는 소대선임하사로서 소대원을 인솔하여 포위망을 돌파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전투하던 중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복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8판-4면-2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ㅎ-02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