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만(李東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50596
  • 전몰일자 : 19511103

공훈사항

이동만 일병은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휴전협상으로 38도선 일대에서 소규모 고지쟁탈전만 실시하고 있던 1951년 9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동만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1951년 10월 3일 이른 아침 1시간에 걸친 공격 준비 사격에 이어 오전 6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임진강상의 주진지를 확보한 가운데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사미천 서안의 91고지와 146고지를 점령하였다. 다음날인 10월 4일도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격전이 전개되었으나 공격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쌍방은 상대방에 대한 기선을 확보하고 방어를 해야 하기에 수색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제한된 규모의 공세적인 전투정찰도 실시하게 되었다. 수색정찰은 적의 방어진지나 활동을 탐색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실시하였으며, 전투정찰은 매복, 습격 등의 활동으로 적 포로를 획득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운용되었다.
교착된 전선에서의 정찰활동은 주로 야간에 전개되었다. 이동만 일병과 소대원들은 적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 진지주변에 철조망·지뢰 등 각종 장애물과 방호시설을 설치 강화하였다. 또한 이 일병과 장병들은 국지경계를 강화하고 철조망을 통과하여 순찰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동만 일병은 소대원들과 정찰활동을 수행하던 중 적 정찰대와의 작은 충돌로 전투가 확대되어 쌍방 간에 수 시간 동안 포격전이 전개되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사격전을 전개하며 최후까지 북한군과 맞서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만 일병은 1951년 11월 3일 임진강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만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5678 육)을 추서하고 위패(33판-39면-2168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ㅌ-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