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만(李東萬)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1805320
  • 전몰일자 : 19530719

공훈사항

이동만 상병은 1924년 11월 18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1949년 1월경 제6여단 제8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3사단 제23연대로 전속되었다. 이 상병은 950년 3월 27일까지 경북 일대에 침투한 북한 유격대 소탕작전에 앞장섬으로써 북한군의 후방교란 기도를 분쇄하는 데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6월 29일 울진지역에 투입되었고, 동해안 축선의 흥해-영덕 축선으로 지연전을 펼쳤다. 이 상병은 7월 하순 영덕 전투에서 분전하다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그는 12월경 회복되어 원대에 복귀했다. 이 무렵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 중인 상황이었다. 이후 사단은 평창, 영월, 제천, 하진부리, 현리 일대를 오르내리며 중공군 제3~제5차 공세를 막아냈다.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951년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했다. 연대는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연대는 9월 하순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서, 1953년 4월 초순에는 사단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서 중공군과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다시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7월 13일 중공군은 금성 돌출부에 대해 마지막 총공세(7·13 공세)를 가했다. 사단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분전했으나, 압도적인 전력에 밀려 흑운토령-주파령-산양리까지 지연전을 펼치면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투에서 이 상병은 분대원을 이끌고 진지를 사수하다 7월 19일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만 상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486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0판-7면-1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0-ㄴ-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