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렬(이동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306347
  • 전몰일자 : 19500825

공훈사항

이동렬 하사는 전라북도 익산군 이리면 고현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1월 초에 전라북도 이리에 주둔한 제3연대로 입대하여 동년 2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 오대산과 태백산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제3연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에 배속되어 의정부지구 전투에 참가했으나, 7월 5일에 평택에서 해체되었다. 당시 이동렬 하사는 제17연대로 전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제17연대는 7월 중순 지연작전 시에 화령장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2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획득하여 계속되던 후퇴 상황에서 장병들의 사기 앙양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어 8월 11일에 기계-안강지역에 투입되어 9월 10일까지 거의 한 달 동안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적의 경주로 진출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제17연대는 영광스럽게도 육군 중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정되었다. 따라서 연대는 안강지역전투를 끝내고 9월 13일에 부산항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하여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했다. 이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인천-서울을 잇는 도로 남쪽을 담당하며 진격하여 김포비행장을 거쳐 9월 25일에는 신사리에서 동빙고 방향으로 도하공격을 실시하여 남산에 이어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했다. 국군과 유엔군 주력이 38도선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제2사단은 7월 20일 함창에서 해체되었다가 11월 7일 서울에서 제17, 제31, 제32연대를 예하 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동렬 하사는 당시 제17연대에서 차출되어 제2사단 수색대로 소속이 전환되었다. 제2사단은 가평으로 이동하여 철원, 의정부, 구화리 일대에서 유엔군의 후방교란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그가 소속된 소대는 11월 25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1개 소대 규모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그는 분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전몰일자 1950-08-25은 아직 제2사단이 창설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1950-11-25로 조정했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9판-3면-00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ㄱ-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