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래(李東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60773
  • 전몰일자 : 19501128

공훈사항

이동래 하사는 1931년 8월 7일 경상남도 울산군 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동래 하사는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1950년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동래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이후 계속된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낙동강 방어선에서 치열한 방어전을 벌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수도사단은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 하사와 장병들은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11월 하순경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여 두만강 진출을 목전에 두었다. 26일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청진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부거로 진출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되면서부터 이 지역에서도 북한군이 반격해 오는 등 서서히 적정이 강화되기 시작하였으나, 이 하사를 비롯한 장병 모두는 용기백배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래 하사는 1950년 11월 28일 부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래 하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0821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ㅈ-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