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래(이동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304560
  • 전몰일자 : 19500719

공훈사항

이동래 일등중사는 전라남도 곡성군 복내면 봉천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월 중순, 전남 광산의 제20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연대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6여단이 1949년 2월 22일에 청주에서 원주로 이동할 때, 그는 제20연대에서 제6여단 직할부대인 통신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통신중대는 홍천에 주둔하며 제2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어론리 북방의 방어진지로 투입되었다. 장병들은 군사력에서 열세했지만 57mm 대전차포 및 대전차 특공조를 구성하여 적 자주포를 파괴하고,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인제에서 홍천에 이르는 적 부대의 진출을 3일간이나 지연시켰다. 이동래 일등중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연대와 사단, 연대와 대대 간의 통신 지원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동분서주했다.
제2연대는 6월 29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지연전을 실시하며 횡성-원주를 거쳐 7월 2일에는 충주로 이동하여 남한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방어준비를 했다. 그러나 연대는 7월 8일 새벽 1시경에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7월 12일에 이화령(2연대)을 포함하는 문경지역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충주-문경-함창 방면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1사단과 제13사단을 저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동래 일등중사가 소속된 통신소대는 제2연대 장병들과 함께 이동하며 통신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제2연대는 7월 16일에 문경 방어를 포기하고 영강으로 철수하여 하천선 방어에 돌입했다. 이후 문경-유곡-점촌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중심으로 조봉, 어룡산 등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7월 19일 유곡지역에서 쏟아지는 총탄 속에 통신지원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래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4면-1251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ㅍ-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