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래(李東來)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9713120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동래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중순 제1교육대에 입대했다. 제1교육대는 전북지역에서 신병모집 임무를 수행하던 제7사단 예하 제3연대를 7월 16일부로 개칭한 부대였다.
8월 20일 제7사단은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이 이등중사는 제8연대에 배치되었고, 연대는 낙동강방어선의 신녕지구전투, 영천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반격작전의 여건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사단은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하여 20일 북한군 제17·32사단의 저항을 물리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 장병들은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원이 되는 영광을 안았다. 연대는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퇴했다. 연대는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으나,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연대는 철수하여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연대는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영월전투에 투입되어 이를 탈환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3월 12일 하진부리까지 진출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연대는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의 신풍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소양강 변의 신풍리 일대에 배치된 연대는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더는 돌파를 허용하지 않고 진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진지를 지키다 적탄에 맞아 5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위패(40판-1면-0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ㅍ-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