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락(이동락)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02278
  • 전몰일자 : 19501028

공훈사항

이동락 일병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만을 수료한 후 수도사단 제26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락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수도사단은 제1연대와 제18연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단은 미군이 방어하고 있던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계속 공격해오자, 이 일병과 장병들은 8월 1일 안동북쪽 일대에서 낙동강 남쪽으로 철수하였다. 이동락 일병과 장병들은 8월 3일 길안과 청송 일대에 새방어선을 설정해 이곳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이 일병과 장병들은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 일대로 다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일부 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사력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북한군의 9월 공세의 일환으로 적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으며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동락 일병은 1950년 10월 28일 원산 진격전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락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8판-5면-2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09-ㄲ-03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