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대(이동대)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800668
  • 전몰일자 : 19511116

공훈사항

이동대 하사는 1928년 6월 13일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서 출생했다.(세부 출생지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8월 1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육군경리학교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육군병참단으로 배치되었다. 육군경리학교는 10월 15일 부로 육군병참학교로 개칭되었다.
1949년 8월 1일 제1병참대대는 조직을 확장하여 육군병참단으로 개편되었고 인천의 육군중앙보급창을 육군병참보급본창으로 개칭하여 육군 각 부대에 신속 정확한 보급지원을 수행했다. 이동대 하사는 서울지구보급창로 재배치되어 필요한 물자를 관리 및 보급 등을 담당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남진하자 서울지구보급창는 육군병참단과 함께 각 전투부대를 밀접히 지원하면서 1950년 6월 27일 서울 용산을 출발하여 안양-수원-평택을 거쳐 7월 5일 대전으로 이동했고, 7월 11일 김천을 거쳐 대구로 이동했다. 그리고 8월 15일 서울지구보급창을 재편성하여 육군병참집적소로 개칭하고, 부산항에서 입하되는 막대한 군수품을 적사하고 보관・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함에 따라 육군피복창이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그리고 국군 부대들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하자 육군병참단도 전방 부대들을 보다 밀접히 지원하기 위해 10월 11일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당시 보급업무의 일원화를 위해 각 지역별로 보급소를 설치했는데 이동대 하사가 소속된 서울보급소는 제101보급소로 개칭되어 제1병참보급중대 제1소대로 편성되었다. 하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유엔군이 후퇴하자 재경 병참부대들은 피지원부대들을 밀접하게 지원하면서 다시 부산으로 이동했다.
육군본부는 1951년 1월 23일 부로 부산시 범일동에서 제179병참단을 창설하여, 제1080병참기지창을 포함한 6개 병참부대를 예속했다. 이때 이동대 하사는 제1080병참기지창으로 전속되어 보급업무에 전념했다. 그 후 제1080병참기지창은 1952년 9월 27일 부로 제8병참기지창으로 개칭되었다. (전사 당시 소속이 제8병참기지창은 오류로 추정)
이동대 하사는 솔선수범하며 전방 부대들에 대한 보급에 전념함으로써 전투부대들의 전투력 유지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51년 11월 16일 경기도 화성에서 분대원을 통제하며 전방부대 지원을 위해 보급품을 하역하는 중 침투한 적 게릴라를 격퇴함으로써 막대한 군수품을 지켜낼 수 있었으나, 적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대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126-ㅇ-08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