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대(李東大)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1978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동대 일병은 경상북도 안동시 안룡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6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위협하였고 제8사단 제10연대가 위치한 영천 북방지역을 압박했다. 1950년 8월 25일에는 보현산 북방 도처에 침입을 개시하였으며, 제8사단과 각 연대는 잠복경계를 하고 있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항공기로 대대적인 폭격을 가하며 북한군의 주저항선 및 방어진지를 분산시키며 그들의 남진을 저지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9월 10일부터 13일까지 낙동강 교두보상의 보현산 부근에서 북한군과 고지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영천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이 일병이 소속된 제10연대 장병들은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예상대로 북한군은 제15사단을 비롯하여 전차 12대와 각종 포 166문의 지원을 받으며 영천군을 공격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내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8사단 장병들은 영천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하여 전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제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9월 8일 영천군을 탈환했고, 1950년 9월 16일에는 영천군을 넘어 의성군 방면으로 공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특히 국군은 1950년 9월 16일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반격 작전을 실시했다.
제8사단은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군단 작전명령 제191호에 의거 주공은 도원동-함창-충주 축선으로 지향하였고 제8사단 제10연대는 조공선으로 의성-안동-영주선으로 반격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일병은 1950년 9월 20일 국군의 반격에 참여하다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대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12판-5면-1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ㄷ-06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