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기(李東基)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3676
  • 전몰일자 : 19510612

공훈사항

이동기 일병은 경상남도 청도군 풍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16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기 일병의 입대를 전후한 상황은 험난하였다. 예기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개입과 공세로 인해 평택-삼척을 연하는 37도선까지 철수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가 서울을 향해 시작되면서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1951년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작전에 참전하였으며 3월 15일 서울을 재탈환하였다.
이동기 일병은 연대 장병들과 함께 38도선 부근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 후 1951년 3월부터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중공군은 또 한 차례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4월 22일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4월 28일 북한군 제8사단과 금촌, 동거리 일대에서 지연작전을 전개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전선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서울 외곽으로 철수하였으며, 29일에는 화전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였다. 이동기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파평산에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지연시켰다. 이 일병을 비롯한 장병들의 투철한 전투의지에 따라 중공군은 서울점령을 포기하고 주력을 동부전선으로 전환하였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이 강원도 인제군 현리에서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였지만 서부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사단은 임진강 일대에서 소규모 매복전투, 상대방의 첩보 및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적진정찰 등의 작전을 계속하였으며 포로획득을 위한 작전 또한 계속되었다. 대규모 작전보다도 더욱 치열하고 정교한 작전이었다.
6월에 접어들어 쌍방은 다시 형성된 38도선 부근의 새로운 전선(임진강구-연천-문산-율곡리)에서 상호 대치하게 되었으며, 전투는 소강상태를 유지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동기 일병은 1951년 6월 12일 금파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기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39면-2168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3-ㅋ-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