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이동근)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104013
  • 전몰일자 : 19500904

공훈사항

이동근 하사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0월 중순, 서울 용산의 제19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50년 4월 19일 원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고, 사단 예비로서 교육훈련과 부대정비에 주력했다.
북한군이 6월 25일 새벽 전면적인 남침을 감행했을 때, 이동근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선발대로 제3대대가 먼저 차량으로 출발하여 오후 8시에 춘천역에 도착했고, 본대는 기차로 청량리를 거쳐 6월 26일 새벽 5시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대는 제7연대를 증원하여 춘천지역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6월 27일에 홍천 방면의 제2연대를 증원하여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6월 30일 오후에 홍천에서 원주로 철수했다.
제19연대는 7월 1일 야간에 이천지역으로 긴급히 투입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지연시킨 후 7월 4일에 진천으로 철수하였고, 7월 9일에 수안보로 이동하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12일 조령과 이화령을 포함한 문경지역에서 점촌-함창 축선으로 지연전을 하며 북한군 제1, 제13사단의 공격을 7월 31일까지 저지했다. 그리고 사단 장병들은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하여 8월 6일까지 적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으나, 결국은 역부족으로 진지에서 철수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를 새로운 방어진지로 점령했다. 그리고 다시 8월 13일 군위, 의흥을 거쳐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했다. 북한군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하여 아군 방어지역에 맹렬히 공격했다.
이동근 하사가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21일 야간에 민부대와 진지교대를 통해 사단 예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연대는 8월 27일에 북한군이 화산 및 조림산을 무혈점령하여 신녕 지역이 위험에 처하게 되자, 이날 신속히 신녕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연대는 8월 28일에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했고, 이후 8월 30일까지 계속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탈환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북한군은 9월 1일 야간에 전차 2대를 앞세운 보전협동부대로 9월 3일까지 계속 공격했다. 이에 연대는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9월 4일에 조림산을 탈취하기 위한 공격을 재개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8묘역-7판-49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5-ㄷ-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