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李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497
  • 전몰일자 : 19520627

공훈사항

이동근 일병은 전라남도 강진군 음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반격을 모색하던 1951년 2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소대는 제2연대를 직접지원했다.
이동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3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후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큰 피해를 받고 용문산까지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반격으로 전환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화천)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그리고 6월 5일부터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하여 6월 10일에 적근산-백암산 선까지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6사단은 유엔사의 작전지침에 의거 공세행동으로 백암산 전방에 위치한 등대리 부근의 819고지-462고지를 9월 21일에 탈취했고, 금성천 분지를 감제하는 교암산(770고지)을 공격하여 10월 21일에 확보했다. 이후 사단은 1952년 1월 10일에 미 제9군단에서 배속 해제되어 양구 일대로 이동하여 야외기동훈련을 포함한 교육훈련에 집중하였다. 다시 사단은 3월 22일에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김화 부근의 거리실, 원남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40사단으로부터 방어진지 일부를 인수하였고, 당시 제2연대는 봉화산(477고지)-교암산(770고지)을 연하는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포로교환 문제로 교착된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작전을 실시하라는 유엔사의 작전지침 의거 1952년 6월 12일에 방어진지 전방의 감제고지(금성천 북동쪽 A, B고지)를 공격하여 6월 15일 탈취했다. 이 무명고지는 피·아를 감제 및 관측하는데 주요한 지형이라 적은 되찾기 위해 역습을 했고, 아군은 다시 공격하는 등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다. 이동근 일병이 소속된 공병소대는 이 전투에서 공격할 때는 장애물을 개척하고, 방어 시에는 장애물를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전선은 다시 소강상태가 계속되었고, 공병소대는 6월 27일에 장애물를 관리하던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4면-1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5-ㄹ-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