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李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206577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동근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고 제6사단 제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근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8월 초순, 제6사단은 8월 3일에 용기동∼교안동∼307고지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8월 8일에 선돌주막지역에서 2개 대대 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치열한 교전 끝에 격퇴했으나, 적 1개 연대가 추가 투입되어 공격하자 저녁 8시 무렵 방동 남쪽으로 후퇴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8월 12일 밤 10시를 기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하여 위천 북쪽 1∼3㎞ 지점에서 국통산∼청노동을 연결하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곳은 적의 주요 접근로로 예상되는 의성∼우보∼신녕 축선의 방어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었다.
제2연대 장병들은 8월 13일부터 시작된 북한군의 계속된 공격을 격퇴했다. 그리고 8월 18일 새벽 3시 무렵 적의 공격을 받고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진지에서 철수했으나, 역습으로 전환하여 밤 8시에는 방어선을 회복했다. 이후 8월 26일까지 국통산을 포함한 중요지형 쟁탈전이 연일 계속되었으나, 공세적인 방어로 격퇴했다. 이후 북한군이 북동쪽의 화산을 점령하자, 연대는 8월 28일에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이동근 이병이 소속된 대대는 9월 1일에 370고지를 적 1개 대대 규모가 공격하는 것을 맞아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격퇴했다. 적들은 9월 2일 야간에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여 영천을 탈환하자, 국군은 ‘낙동강방어선을 지킬 수 있느냐’하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에 장병들은 자신이 점령한 방어진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9월 3일 야간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0-ㅇ-00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