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이동근)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94300
  • 전몰일자 : 19530615

공훈사항

이동근 이등중사는 1929년 5월 31일에 경기도 연백군 연암면 연성리 302번지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진행 중이던, 1951년 3월 9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26연대로 배치되었다. (*소속이 제25연대로 되어 있으나, 당시 제25연대는 해체되었으므로 제26교육보충연대로 조정)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1950년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7월 16일부로 각 편성관구사령부 예하에서 무기와 장비 보충이 없는 상태에서 신편(신병 모집) 중이던 연대들을 신병교육대로 개칭했다. 이에 따라 전남편성관구사령부 예하 제26교육보충연대가 제3교육대로 개칭되어 광주에서 대구로 이동하여 경북편성관구사령부 통제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제1훈련소가 창설되었고, 8월 26일 제1훈련소에 제1·2·3·5·6·7·8·9교육대가 통합 편성되었다. 제1훈련소는 1951년 1월 22일부로 대구에서 제주도 모슬포로 이전하여 원래 이곳에 있던 제5훈련소와 통합하면서 3월 14일부로 명칭이 제1훈련소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제주도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군・경의 토벌작전에서 살아남거나 한라산으로 도피한 적 게릴라 잔당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이들의 유격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까지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게릴라들이 출몰할 때마다 제주도 주둔 해병대사령부나 제1훈련소 병력이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해 왔다.
제1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주력하면서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 소탕 작전을 했고, 이동근 이등중사는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제3교육대 기동타격대로서 소탕 작전에 앞장서 왔다. 1953년 6월 15일 대정면사무소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 작전에 투입되어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동근 이등중사는 탐색조장으로서 조원들과 함께 적 게릴라를 색출 중 은거해 있던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7면-3542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7-ㄷ-02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