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李東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33846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동근 이등중사는 전라남도 나주군(現 나주시) 백죽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31일 입대하여, 부산에 위치한 육군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동근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잇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총반격을 개시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에서 격전을 치르면서 1951년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이어서 사단은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하며,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의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 작전 시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면서 1952년 1월 23일부로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전선방어에 투입되었다. 사단은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351고지가 피탈되었으나 몇 차례의 역습을 전개하여 재탈환하면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되어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제5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를 공격해 왔다. 그러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중공군은 6월 10일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했다. 사단은 3차례 역습을 하면서 6월 15일까지 혈전을 거듭했으나, 북한강 동·서안의 등대리-후동-널우골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여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그 후 전선 조정으로 백암산을 포함하여 사단이 담당하게 되면서 책임지역이 확장되었다.
소백암산을 방어하고 있는 제35연대는 7월 14일부터 다음날까지 총 3회의 중공군 공격으로 장재동으로 철수했다. 연대는 7월 16일부터 이틀간 소백암산과 876고지를 목표로 공격하는데 실패하고 급편방어로 전환했다. 이동근 이등중사는 7월 16일 소대원을 지휘통제하며 소백암산을 공격하다가 적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6판-6면-127호)을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6-ㅈ-05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