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근(李東根)

  • 군별 : 경찰
  • 계급 : 경사
  • 군번 :
  • 전몰일자 : 19520627

공훈사항

이동근 경사는 1926년 12월 17일 전북 정읍 영원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부안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부안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전북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부안경찰은 전투태세를 강화하며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부안-군산, 부안-김제, 부안-정읍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이 경사는 7월 19일 전북경찰 제1대대에 편성되었으며, 북한군에 의한 점령당한 강경을 수복하는데 기여하였다. 그 후 이 경사가 소속된 부안경찰은 전북경찰의 일부로서 7월 18일 정읍을 거쳐 7월 21일 남원에 도착하여 7월 30일까지 다른 경찰병력(경남·서울·충남)과 함께 육십령 방어작전을 수행했다. 7월 30일 진주가 포위되어 경찰 1,000여 명과 군병력 1,000여 명은 7월 31일 의령으로 철수했다. 합천으로 집결한 충남·서울·전북의 경찰병력은 일부는 고령으로, 일부는 창녕으로 낙동강 동안으로 이동했으며, 의령의 경남·전남병력은 함안-마산으로 철수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일역을 맡게 되었다. 고령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작전에 임하고 있던 부안경찰은 8월 4일 함안으로 후퇴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임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부안경찰은 9월 17일 함안을 출발, 10월 3일 부안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수행했다.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경사는 제1차-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어서 이 경사는 서남지구 전투부대에 편성되어 공비토벌작전(제1기: 1951.12.1.-12.14, 제2기: 1951.12.16.-1952.1.4, 제3기: 1952.1.5.-1.31, 제4기 1952.2.4.-3.14)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이 작전 후 이 경사는 무주경찰서에 복귀하여 치안유지활동에 전념했다.
6월 27일 부안 산내면에 공비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부안경찰이 출동했으며 곧바로 교전이 벌어졌다. 이 경사는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여 공비들을 격퇴하다가 공비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근 경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8-ㄱ-0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