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규(李東圭)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3700573
  • 전몰일자 : 19501101

공훈사항

이동규 하사는 1928년 2월 25일에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음에도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던 1949년 7월 27일, 경기도 부평의 의무학교로 입대하여 소정의 군사교육과정을 수료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의무대로 전속되었다.
이동규 하사가 소속된 의무소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춘천 북방에서 3일간 저지하고, 원창고개와 횡성을 거쳐 7월 1일에 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제6사단은 7월 한 달 동안은 충주-문경-함창 축선에 적의 진출을 지연하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9월 16일 오전 8시부로 반격하여 조림산 일대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멸하고, 9월 23일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추격했다. 사단은 9월 30일에 원주를 탈환했고,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이어 10월 10일에 김화를 거쳐 금성에 도착했고, 마식령을 넘어 16일에는 평남 양덕에 도착했다. 10월 19일에는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한 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동규 하사가 소속된 의무소대는 제7연대와 함께 하며 부상병 치료와 후송업무를 담당했다.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총공세작전(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실시했다. 제7연대는 희천에서 정비 후 온정리를 거쳐 압록강 변의 벽동으로 공격했다. 이 시기에 동림산(1165m) 기슭에서 매복 중이던 중공군(제40군)은 온정리에서 벽동으로 진격하던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고, 이에 제6사단은 10월 26일까지 버티다가 상급부대 명에 의거 개천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동규 하사가 소속된 의무소대는 제7연대 본부와 함께 이동하며 부상자를 치료했다. 의무소대는 철수하던 중에 중공군으로부터 몇 번의 기습공격을 받아 피해는 계속 증가했다. 이후 의무소대는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던 중 11월 1일에 개천 일대에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또 받았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7묘역-2판-1941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ㅅ-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