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규(李東圭)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10957
  • 전몰일자 : 19500806

공훈사항

이동규 일병은 1930년 4월 22일에 경상남도 부산시 진구 당감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50년 1월에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본부로 배치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에 기습남침하자, 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지연전을 수행했다. 미 제24사단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전에 참전한 미 제25사단에 통역요원이 필요했고, 그는 통역병으로 미 제25사단으로 전속되었다. 이때는 정식으로 카투사(KATUSA) 제도가 생기기 전이었다.
미 제25사단은 예하 제27연대가 7월 10일에 먼저 부산에 상륙하였으며 제24연대는 12일, 그리고 제35연대는 13~15일 사이에 각각 상륙을 완료하였다. 사단은 7월 13일에 제27연대를 안동으로 추진하고, 상주로 올려보낸 제24연대에서 제2대대를 뽑아 포병 1개 포대와 함께 예천에 투입하여 제천ᐨ풍기ᐨ안동 축선을 담당하고 있는 국군 제8사단과 충주ᐨ문경ᐨ함창 축선을 담당하고 있는 제6사단 사이의 간격을 보강하게 하였다. 그리고 제35연대는 김천으로 이동하여 예비로 운용하였다.
사단은 7월 18일에 미 제1기병사단의 주력이 포항에 상륙함으로써 임무가 변경되었다. 미 제1기병사단이 경부국도의 제24사단을 지원하자, 제25사단은 상주 정면의 국군 제1, 6사단 지원에 전념하게 되었다. 이에 사단지휘소를 영천에서 상주로 이동하고, 김천의 제35연대를 함창으로 추진하고, 제24연대로써 상주 서쪽의 괴산ᐨ화령장ᐨ상주 도로의 방어에 중점을 두도록 하였다. 그리고 안동의 제27연대를 보은ᐨ황간 도로로 이동시켜 그 정면의 적을 지연토록 하였다. 이로써 사단은 상주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방어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당시 이동규 일병은 미 제25사단에 통역요원으로 전속되어 상주전투에 직접 참가했다.
이후 북한군 제6사단이 광주 등 호남을 경유하여 진주를 거쳐 마산으로 기동하여 부산을 위협했다. 이에 이동규 일병이 소속된 미 제25사단은 8월 1일에 상주에서 마산으로 신속히 이동하여 배치되었고, 이곳에서 마산-부산 방향으로 공격하며 부산을 위협하는 북한군 제6사단을 마산 전방에서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진동리에서 마산 방향으로 공격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그가 소속된 제27연대는 격퇴했다. 그는 8월 6일 전투시에 통역요원으로 미 제27연대 지휘소와 함께 움직였는데, 지휘소가 적 침투부대에 습격당했다.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4면-0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9-ㅇ-04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