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국(李東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901396
  • 전몰일자 : 19510529

공훈사항

이동국 이등중사는 1925년 7월 30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경 제2여단 제9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동년 6월 제7사단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7사단은 동두천, 포천과 창동방어선, 한강방어선의 노량진, 안양 일대에서 적의 공격을 지연시켰으나, 전투력 손실이 심해 7월 5일 해체되었다. 7월 20일부터 사단은 민부대로 개칭되어 임실-남원-하동-진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고, 함안의 서북산, 진동리 일대와 포항 전투에 투입되어 적과 혈전을 치렀다. 사단은 8월 20일 대구에서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되었다. 북한군 8· 9월 공세 때 사단은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쳤으나,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부딪혀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사단은 영월-평창-하진부리 축선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중공군의 제3~제4차 공세를 막아냈다. 1951년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정자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해서 이곳에서 적의 돌파를 더는 허용하지 않고 진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장애물을 엄호하며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5월 2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국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ㅇ-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