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국(李東國)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501951
  • 전몰일자 : 19510827

공훈사항

이동국 이등중사는 1929년 12월 7일 전라북도 김제군 남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고자 1949년 8월 27일 제2사단에 입대하여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5연대는 의정부, 창동, 말죽거리, 과천, 안양 일대 전투에 투입되어 격전을 치르고, 문의-보은-청주로 축차적으로 철수하면서 지연전을 펼쳤다. 연대는 7월 25일 해체되었으나, 8월 20일 민부대에서 제5연대로 개편되었고 제3·8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었다. 연대는 군위, 영천 전투에 투입되었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경주-안동-문경-수안보-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연대는 평강-곡산-평양 북방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로 진격했다. 연대는 11월 초 개천 동쪽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38군단과 혈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묘향산 전방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1월 27일 철수를 개시하여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의 38도선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부터 1951년 5월의 중공군 제5차 공세 때까지 연대는 중동부 축선의 하진부리-평창-영월-인제 선을 오르내리며 중공군 및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연대는 양구 일대에서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미 제8군은 전체 방어선 가운데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양구 일대의 전선을 밀어 올리도록 미 제10군단에 임무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8월 9일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 일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여,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치열한 교전 끝에 적을 물리치고 9월 2일 이를 확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이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진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8월 27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국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20묘역-11판-571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ㅇ-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