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구(李東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01696
  • 전몰일자 : 19510518

공훈사항

이동구 하사는 1927년 2월 12일에 경상남도 울산군 농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일,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동구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을 때, 유엔군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고 다시 38선 일대로 후퇴했다. 그리고 제2사단은 전선 조정에 의해 3군단에 배속되어 명지산 전방의 양문리-탑두울 일대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제2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총공세로 주저항선이 돌파되어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가평을 거쳐 여주-제천을 풍기로 이동하여 병참선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사단은 안동지역으로 이동하여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를 거점으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제10사단을 격멸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했다. 그가 소속된 제31연대는 영주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북한군은 유엔군이 북진할 때 미처 도망가지 못한 패잔병들로서 중공군 공세에 맞추어 재조직하여 이 일대를 거점으로 후방교란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
제2사단은 1951년 3월 18일부터 30일까지 안동 일월산-보현산 일대에서 대대적인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하였고, 이동구 하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게릴라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연대는 4월 1일부로 여주로 이동하여 보급로 경계임무를 실시하고, 이후 제2사단은 안동에서 속리산-제천 일대로 작전지역을 확대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다가 4월 28일에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미 제9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조심스럽게 38도선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공산군의 활동이 현저히 강화되고 새로운 공세징후들이 포착되자 장병들은 방어로 전환했다. 이동구 하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가평일대에서 방어로 전환했는데, 예상대로 대규모 중공군 공세(일명 중공군의 5월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장병들은 중공군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으며, 그는 5월 18일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구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1면-23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ㄲ-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