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개(李東開)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0063
  • 전몰일자 : 19500929

공훈사항

이동개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으로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기에 이 일병은 소총 분해결합 정도의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7사단은 영천전투에서 적과 공방 중인 상황이었다. 사단은 9월 5일부터 9일까지 영천 동북방의 조교동과 영천 남방의 오수동, 채약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의 진출을 저지하고, 9월 10일 반격으로 전환하여 13일까지 적과 치열한 전투 끝에 적 제15사단을 포위 격멸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 최후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만들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안강 북쪽의 도덕산 방면으로 진격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함으로써 2주간 공백상태로 있던 국군 제1군단과 국군 제2군단 경계지역의 간격을 메우게 되었다. 9월 19일 연대는 수도사단 제18연대와 함께 합동으로 기계 일대 561고지를 공격해서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수도사단과 함께 격전 끝에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21일 도덕산을 점령하고 기계를 탈환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추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미 제8군 예비로 경주에 집결해 있다가 9월 29일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7일 서울의 돈암동에 도착했다. 이 추격전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나아가다 북한군 패잔병의 기습을 받고 9월 29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ㅎ-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