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동개(이동개)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36096
  • 전몰일자 : 19511202

공훈사항

이동개 이등중사는 1927년 11월 23일에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수용소에서 출생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이등중사는 1950년 9월 20일에 입대 후 카투사로 선발되어 미 제8군으로 전입되었다가 육군의 부대조정에 의거해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제9사단은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경북 김천지구 및 왜관지구에 투입되어 공비들을 소탕한 후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점령하였다.
이후 중공군의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1951년 1월 3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이다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하여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어 중공군의 공세를 격퇴했다. 사단은 3월 5일에 제1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4월 25일부로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를 점령했다.
이어서 중공군 5월 공세 당시 제9사단은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방태산을 넘어 광원리-속사리로 철수했다. 제9사단은 1951년 6월 24일에 새벽 고지 탈환을 위해 3개 방향에서 일제히 포위 공격을 감행했다.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되찾기 위해 6월 26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가해왔고 이에 맹렬한 포 지원으로 교차 사격을 하였으나, 사단은 8부 능선으로 철수하여 부대를 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아군은 1951년 10월이 되자 적군이 휴전회담을 제의한 이유가 전력 정비를 위한 시간 확보에 있음을 간파했다.
이에 아군은 일명 ‘코만도 작전’이라는 추계공세를 대대적으로 펼치게 되었다. 이후 10월 17일에 미 제3사단이 맡고 있던 395고지(백마고지) 일대의 방어진지를 인수하여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이 이등중사는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1년 12월 2일에 안타깝게도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동개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1-ㅍ-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