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돌이(李乭伊)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사
  • 군번 : 0215475
  • 전몰일자 : 19530718

공훈사항

이돌이 중사는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중사는 1950년 9월 27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수도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중사가 연대에 배치될 무렵 연대는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 중사와 연대 장병들은 파죽지세로 나아가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연대는 길주-백암-혜산진으로 북진하여 30일 한·중 국경선의 혜산진에 도달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부산에 상륙했다. 연대는 12월 25일부로 제3사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5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5월 25일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 일대의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973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9월 하순 중공군 제203사단과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이후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을 지속했다.
사단은 1953년 6월 15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7월 13일 중공군은 금성 돌출부에 대해 총공세(7·13 공세)를 가했다. 금성천 북방의 여문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60군 예하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아 흑운토령-주파령-산양리까지 후퇴했다. 이 전투에서 이 중사는 소대원을 독려하며 진지를 지켜내다 7월 18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돌이 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9-ㅍ-097)에 그의 이름을 새겨, 후세들이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본받도록 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