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돌용(李乭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5205006
  • 전몰일자 : 19501018

공훈사항

이돌용 이병은 경상북도 경주군 양북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돌용 이병은 전선에 배치되어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제13,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였으나 이 이병이 소속된 연대는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의 막강한 저항에 부딪친 북한군은 현풍-왜관-328고지-수암산-유학산-신주막 선에서 저지되었다.
9월 10일 북한군 제1사단이 가산 일대에서 공격을 재개하여 병력을 도덕산(660m) 일대로 남진시키고 일부 병력을 팔공산 일대로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 이병과 연대병력은 9월 14일에 대구 북쪽의 약 10km 지점에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돌용 이병을 포함한 연대병력은 9월 25일 낙동리에서 도하를 완료하고 추격 작전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소속된 사단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적 제2, 제3, 제4, 제7, 제9사단 등 여러 사단들의 패잔병을 추격하여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계속해서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돌용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충북 보은지구에 잔류하여 잔적을 소탕하던 중 10월 7일 이동을 개시하여 안성-서울을 거쳐 임진강 북안의 고랑포로 진출하였다. 이 이병과 장병들은 여타 인접 부대들보다 먼저 38도선을 돌파하여야 한다는 굳은 결의로 장병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10월 17일 이 이병과 장병들은 38도선 돌파 이후 일일 진출거리로서는 최고기록인 42km를 진격하여 평양 동남쪽 26km 지점 상원-율리 선을 점령하였다.
이돌용 이병과 장병 모두는 혼연일체가 되어 투혼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히 싸웠던 이돌용 이병은 1950년 10월 18일 상원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돌용 이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91280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ㄷ-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