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희(이돈희)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124192
  • 전몰일자 : 19530226

공훈사항

이돈희 중위는 1931년 3월 5일에 출생하였다(출생지 미상). 일제의 패망과 광복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매우 혼란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군 입대를 결심하고, 1948년 5월 중순에 서울 태릉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에 법무 제2기로 입교했다. 이곳에서 6개월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948년 12월 21일에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돈희 중위는 제1사단에 부임하여 1952년 10월부터 임진강 서안 일대를 방어하고 임진강 동안의 고지전을 수행하였으며, 때때로 북한군 전초진지에 침투하여 북한군 포획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부전선에서 진지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을 때, 연천 북방의 임진강 북안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국군 제1사단이 고양대 일대의 전초진지(니키 고지, 테시고지, 노리 고지, 베티 고지)에서 중공군과 접전하여 주저항선을 방어하였다. 이후 12월 13일까지 이어진 이 전투에서 이돈희 중위와 사단 병력은 초전에 니키 고지와 테시고지를 상실하고 그 직후방의 베티 고지와 노리 고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중공군이 재차 공격을 감행하자, 부대 장병들은 포격지원과 항공 근접지원을 받아 가며 끈질긴 공방전을 벌인 끝에 베티 고지와 노리 고지를 확보하였다.
이 중위의 진두지휘 하에 사단 장병들은 1953년 1월 23일 노리 고지를 급습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다. 이에 따라 고지탈환 후 북한군의 기습을 대비하여 야간정찰과 진지 보강작업에 주력하였다. 쌍방은 교착된 전선에서 전투보다는 진지 강화와 부대정비에 전력하였으며, 전초와 엄호부대 사이의 수색 정찰대 운용을 강화하였고, 방어진지나 활동을 탐색하는 수색 정찰 등을 주목적으로 실시하였다.
이 중위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기에 놓인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방전을 계속하며 투혼을 발휘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장병들에게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소대장이었다. 전투 경험이 없는 장병들을 지휘해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였던 이돈희 중위는 1953년 2월 26일 임진강 지구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희 중위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충무무공훈장(훈기번호 12306 육)을 추서하고 위패(22판-2면-93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1-ㄱ-01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