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찬(李敦燦)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5217
  • 전몰일자 : 19510204

공훈사항

이돈찬 일병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1950년 9월 8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일병은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9월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고, 제7사단은 경주 무릉산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9월 13일까지 이곳에서 북한의 최후 공세를 막아냄으로써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사단은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장호원을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연대는 3일 군우리 북방의 비호산 일대에서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연대 장병들은 7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연대가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함으로써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1월 14일 연대는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연대는 미 제8군 철수계획에 따라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주진지가 돌파됨에 따라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이 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951년 1월 19일부터 만경대산과 응봉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24일 영월로 진격하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영월 전투에서 이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히 공격하다 중상을 입고 제27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2월 4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9판-5면-24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5-ㅊ-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