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종(李敦鍾)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0122365
  • 전몰일자 : 19500922

공훈사항

이돈종 이병은 1929년 1월 26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명동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자, 그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이병은 1950년 9월 2일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북한군과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7사단은 8월 20일 제3·5·8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재창설된 후, 9월 3일 제8사단에 배속되어 경상북도 영천 북방의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어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제8사단 정면이 적은 북한군 제15사단과 배속된 제73독립연대 및 제103치안연대였다. 적 입장에서 영천은 포항-대구 간의 병참선을 차단할 수 있고, 대구를 방어하고 있는 유엔군의 후방을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북한군 제15사단은 9월 5일부터 입암과 영천 사이의 도로를 따라 3개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적은 9월 6일 아군 방어선을 뚫고 영천 시가지를 점령 후, 경주를 향해 남진했다. 아군 제2군단은 6일부터 일부 지역에서 역습을 감행했고, 영천 주변 곳곳에서 피아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때 제5연대는 영천 남쪽의 임포 근처에서 혈전 끝에 8일까지 적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국군 제2군단이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9월 10일 반격을 시작한 군단은 9월 13일 구전동-자천동-인구동을 연결하는 북한군 9월 공세 이전의 주저항선을 회복했고, 적 제12사단과 제8사단은 측방이 위협받게 되었다. 9월 10일부로 제8사단에서 원대 복귀한 연대는 이날 반격을 가하여 임포를 탈환하고, 영천으로 후퇴하는 적을 추격했다. 9월 12일 연대는 관산을 탈환하고 일대의 적을 격멸했고, 13일에는 기계-안강 방면의 적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무학산과 384고지를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기계 방면으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격멸함으로써 영천전투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고, 낙동강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었다. 영천전투에서 이 이병은 신병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9월 22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종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49-ㄱ-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