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재(李敦栽)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3701529
  • 전몰일자 : 19510301

공훈사항

이돈재 이병은 1932년 5월 10일에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했던 1950년 10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에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돈재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1월 중순, 국군과 유엔군은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후 11월 24일에 총공세를 감행했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덕천-시변리-고랑포 축선으로 철수하여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수색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은 예상대로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감행하여 서울을 점령하고자 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을 맞아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최대한 타격을 가했으나,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적들이 사단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동두천 부근을 공격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에 사단장은 전방연대가 고립될 것을 우려하여 철수를 명령했고, 장병들은 방어진지로부터 철수하여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집결했다. 이후 1월 3일에 경기도 광주의 한강 남안에 진지를 점령했다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미 제9군단은 1월 15일부터 울프하운드 및 썬더볼트작전을 수행하여 적정을 파악하였고, 제6사단은 2월 초에 방어배치를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조정했다.
얼마 후 중공군은 2월 12일에 주공을 횡성-홍천 방향에 두고 대규모 공세(일명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실시했으나, 유엔군은 이를 격퇴하고 다시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 시기에 이돈재 이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 수집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3월 1일에는 적 지휘소를 습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재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5면-2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ㅎ-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