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식(이돈식)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14781
  • 전몰일자 : 19510521

공훈사항

이돈식 하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금사면 이포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평택-삼척 선으로 철수했던 1951년 1월중순에 충주 일대에 주둔해 있던 제2사단으로 현지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돈식 하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3월 20일, 제2사단은 안동 부근의 일월산과 보현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10사단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사단은 4월 초순에 공비소탕작전을 완수하고, 4월 28일에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로 이동했다. 당시 미 제9군단은 ‘중공군의 4월 공세’를 저지하고 조심스럽게 적정파악을 하며 5월 9일에는 가평까지 진출했다. 이로써 ‘중공군의 4월 공세’로 상실했던 지역 중 절반을 회복했다. 한편 미 제8군사령부에서는 전 전선에서 반격작전을 계획했으나, 5월 10일을 전후하여 공산군의 활동이 현저히 강화되고 새로운 공세징후들이 포착되어 반격작전계획을 취소하고 방어로 전환하도록 했다.
제2사단은 가평 일대에서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중공군의 5월 공세가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작전목적은 주공을 동부 전선으로 지향해 그곳에 집중된 국군을 격멸하여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에 4월 공세와는 달리 양익포위를 발전시켜 3중으로 국군을 포위 섬멸하는 다중포위를 사용하고, 국군 후방의 주보급로를 다중으로 차단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도했던 국군에 대한 3중 포위에 실패하고 곧 공세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에 아군은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이돈식 하사가 소속된 수색대는 당시 사단사령부를 경계하고 있었다. 적 정찰대는 사단지휘소를 습격하기 위해서 아군지역으로 침투했다. 사단 사령부는 5월 21일에 적 정찰대의 습격을 받았고, 그가 소속된 수색중대는 즉각적으로 반격하여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30묘역-판–265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ㄴ-08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