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돈식(李敦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9482
  • 전몰일자 : 19510204

공훈사항

이돈식 일병은 1923년 9월 29일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0월 4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2군단에 배치되었다.
군단은 창설 직후 충주 방면으로부터 문경군 유곡지역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예하 제6사단으로 하여금 저지하게 하는 한편, 풍기 방면으로 남하하는 북한군 2개 사단에 대해 예하 제8사단으로 하여금 지연작전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돈식 일병이 소속된 제2군단은 중부전선에서 38도선 돌파 및 진격작전을 담당하였다. 38도선을 돌파한 국군 제2군단이 예상보다도 순조로운 진격을 계속하자 육군본부는 10월 8일 오전 11시에 제2군단을 원산으로 이동시켜 그곳에서 제1군단과 교대한 후 원산을 경비하도록 하였다.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의 제1차 공세에 밀려 철수하던 이 일병과 장병들은 연이은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11월 하순 덕천-맹산 일대에서 큰 타격을 입고 철수하였다.
중동부전선의 험준한 산악지역을 방어한 군단은 1951년 1월 1일 홍천-원포리 방향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7일에는 홍천에서 영월로 이동 중 적과 조우하여 격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돈식 일병과 장병들은 군단의 방어선인 두평-후천-정선-송계리 전방에서 적의 공격이 감소하자 군단 후방 지역의 위협을 제거하고 후속부대의 증원을 차단할 목적으로 18일 남대리 부근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산속으로 잠적한 후 야음을 이용하여 기습공격으로 저항하였으나 포병화력과 항공지원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분산되어 산중으로 도주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돈식 일병은 1951년 2월 4일 교암산 부근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돈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5판-7면-2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77-ㄱ-09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