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환(李道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518
  • 전몰일자 : 19500915

공훈사항

이도환 일병은 부산시 서구 대신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일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8월 하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흥해 남쪽 고지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면서 진지를 지켜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북한군은 9월 2일을 기해 총공격(9월 공세)을 개시했다. 제3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5사단은 제5공격집단의 조공으로 2일 새벽 3시를 기해 포항과 영일 비행장을 목표로 일제히 공격을 전개했다. 제3사단은 좌전방에 사단에 배속된 제10연대를, 중앙에 제22연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제23연대를 우전방의 93고지-환호동 일대에 배치했다.
적의 강력한 공격에 제10연대와 제22연대의 접경지역이 돌파되기 시작했고, 양 연대는 포항 뒷산 일대 등으로 일시적으로 철수했다. 이때 제23연대 장병들은 93고지를 놓고 16회의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두호동~환호동 선으로 철수했다.
사단은 9월 2일 10시에 포항 방어에 중요한 128고지, 105고지, 93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역습을 감행했다. 이때 제23연대는 93고지를 공격했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목표 하단에서 공격을 중단했다. 적은 파상적인 공격을 가해 왔고, 사단은 소티재 고개 일대로 다시 철수하여, 자명동-111고지-96고지-소티재-두호동 선에 급편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연대는 두호동-환호동 선에서 9월 4일까지 적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거듭했다.
5일 새벽 적은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쳤다. 일련의 공방전에서 연대 장병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로 적과 싸웠다. 이 일병은 신병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9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4면-2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4-ㅇ-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