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호(李道毫)

  • 군별 : 해병
  • 계급 : 상병
  • 군번 : 9205670
  • 전몰일자 : 19510513

공훈사항

이도호 상병은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1950년 8월 30일 제주도 해병대 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 과정을 마친 후 1950년 9월 25일 해병대 제1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상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제1대대는 해병대 제1연대의 일부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경인지구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대대는 9월 22일부터 북아현동, 서대문, 종로이북을 담당하여 잔적을 소탕했으며, 대대는 10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는 양주군 일대에서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대대는 차후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10월 7일 인천에서 출항하여 원산으로 향했다. 10월 28일 원산에 도착한 대대는 간성지구 소탕작전(11.5-11.8), 고성지구 소탕작전(11.9-11.27), 마전리지구 전투(11.10-11.13)를 수행하여 많은 전과를 올리고 원산지구 방어작전으로 전환했다.
1951년 1월 4일 서울이 다시 적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적은 파죽지세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적의 일부 부대는 동부 산악지역을 따라 남하하여 안동·의성까지 도달했다. 이에 미 제8군사령관은 미 해병대 제1사단장에게 안동-영덕을 잇는 도로 이남에서 적의 남진을 저지하고 주보급로를 방호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배속부대인 한국 해병대 제1연대는 명에 의거 1월 초 영덕 원정동(영덕 서북쪽 18km)에 도착한 후 수색정찰을 위한 준비를 했다. 이 지역 일대에는 적 패잔병 400여 명이 준동하고 있었다.
1951년 1월 29일부터 영덕지구에 투입된 연대는 이 지역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북한군을 격멸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했다. 연대는 2월 12일까지 작전을 실시하여 영덕-안동 간 보급로를 확보함으로써 아군의 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서 연대는 홍천지구 전투(1951.3.18.-4.3.)를 수행하고 화천으로 기동했다.
북한군은 화천저수지와 북한강을 천연적인 방어선으로 설정하여 아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려고 했다. 연대는 4월 22일 작전을 개시하여 화천저수지 수문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후퇴하는 과정에서 중공군과 교전이 벌어졌는데, 5월 13일 이 상병은 용감하게 적을 물리치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호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19묘역-7판-25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으며,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2-ㅅ-00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