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형(李道衡)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73098
  • 전몰일자 : 19530716

공훈사항

이도형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서 1931년 10월 16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12월 17일에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의 부대 전입 후 얼마 뒤, 제8사단은 수색 작전 도중 1952년 5월 중공군의 공세를 받았지만 연대의 분전으로 적군을 패주시킬 수 있었고, 이후 고지를 선점하여 군사 분계선을 확정할 수 있었다.
6·25전쟁의 휴전을 앞두고 적군은 철원 평야를 빼앗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수도고 지를 공격해왔다. 수도고지는 600m 내외의 작은 고지로 지도에 조차 기록되지 않은 무명 고지였다. 하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은 수도고지를 휴전 협상 후 남한을 관측하기 좋은 요충점으로 여겨 대대적인 공격을 하기 시작했으며, 국군은 수도고지 사수를 위해 3번의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이에 수도고지는 적의 손에 피탈되지만 아군은 공중 폭격과 군단 포병의 지원을 받아 6차례에 걸친 역습으로 다시 수도고지를 차지해 진지를 강화하고 주기적으로 수색 작전을 실시하였다.
1953년 1월까지 이어진 수도고지 전투가 끝나고, 제8사단은 북한군의 또 다른 공격 징후를 간파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전초 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4개월이 지나 북한군이 1953년 5월 13일,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탄을 가함에 따라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는 국군의 전초 진지인 마제형 진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아군을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3년 5월 17일까지 이어졌으며 5월 27일부터 6월 4일까지는 지형능선, 수도고지에서 공방전을 펼쳤다.
그 후 중공군은 연막탄과 전차 및 포병 지원을 받으며 수도고지 진내까지 공격해왔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진내에서 중공군과 백병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6월 14일 수도고지가 점령당하고 제8사단의 주저항선이 붕괴됨에 따라 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이등중사는 철수하는 과정 중 분전 끝에 1953년 7월 16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형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6면-09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ㅇ-030)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