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도현(李道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505462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도현 일병은 1931년 11월 29일 경상남도 양산군 물금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27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도현 일병이 진지구축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의 상황은 긴박하였다.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이 시작되면서 전면전이 되고 말았다. 기습남침 3일 만에 서울을 빼앗긴 국군은 긴급 참전한 유엔군의 지원으로 낙동강까지 철수한 후 8월 초 포항으로부터 안동-영천-신령-칠곡-현풍-창녕-마산을 잇는 200㎞ 길이의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도현 일병은 제1사단에 소속되어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8월 12일~24일)를 수행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에 임했으며,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응전하였다. 연대는 수차례 반복된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그때마다 전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의 접근을 저지하였으나, 탄약이 소진되고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전력이 급격히 저하되었다. 이 일병이 방어전투를 수행하는 고지에서는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반복되면서 북한군과 아군의 시체가 쌓여갔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위기에 처한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을 방어하였던 이도현 일병은 1950년 9월 3일 조교동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이 쏜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도현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31묘역-판-244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1-ㅇ-05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